[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밀면, 배고픔과 풍요 사이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7월 30일, 오전 06:30

전호제 셰프

보통 식당을 찾을 때쯤이면 사람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다. 일이든 여행이든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특별한 에너지 충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런 더위에 시원한 밀면은 다시 기운을 차리기 좋은 음식이다. 부산의 향토 음식이지만 요즘엔 서울의 핫플레이스에도 밀면집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밀면의 본고장은 부산을 중심으로 경남, 제주까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부산은 곳곳에 밀면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해도 될 만큼 흔하다. 시장 안 분식점에도 간단한 스타일의 밀면이 있고, 고기와 고명이 들어간 전문점도 있다.

부산, 거제 지역 음식으로 유명
부산 근처 거제도로 가도 나름의 밀면을 즐긴다. 부산과 해저터널로 연결되며 급행버스가 30분마다 다니기에 부산과 거제의 생활권은 출퇴근 생활권이다.

밀면은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온 피난민이 북한에서 즐겨 먹던 냉면을 메밀 대신 밀가루와 전분으로 만든 음식이다. 이런 피난민들의 정착 과정을 살펴보면 밀면을 이해하기 쉽다.

최근에 거제에 흥남철수기념관이 새로 문을 열었다. 이곳에 가면 당시 흥남항에서 전쟁을 피해 10만 명의 피난민이 거제에 정착한 과정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철수하는 배 안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는 강인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김치 1호에서 5호까지 별명을 지어줬다. 거제에 정착한 사람들 속에 밀면이 함께했다.

거제에서 먹은 밀면은 물, 비빔, 물 같은 비빔, 이렇게 세 종류로 나뉘어 있었다. 물 같은 비빔은 물과 비빔의 중간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어중간한 스타일이 밀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육수와 비빔양념을 자유자재로 쉽게 선택할 수 있다. 한여름에도 따뜻한 온육수를 먼저 서비스로 주는데 이열치열을 느낄 수 있다.

거제밀면 중 '물 같은 비빔' 모습. 물냉면과 비빔냉면의 중간이라고 보면 된다. (필자 제공)

흥남 철수 피난민들의 이야기가 담긴 거제 밀면
거제와 멀리 떨어진 제주에서도 밀면을 즐긴다. 제주도도 나름의 밀면 문화가 있다. 1·4 후퇴 때 피난민이 모슬포에 정착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지금은 대형 분점이 많지만 15년 전 모슬포의 본점은 오히려 규모가 작아 마치 개인식당 같았다. 제주밀면은 부산에 비해 덜 자극적이고 심심하다. 부산 출신이 먹으면 아마도 이게 밀면인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제주에 살 때 더운 여름이면 고기국수보다는 밀면집을 찾았다. 종류는 물, 비빔, 수육, 이렇게 세 가지뿐이다. 거제에서 먹던 것보다 양념이 진하지 않다. 여럿이 가면 두툼한 수육을 먼저 주문해서 먹는다. 기름과 살코기가 곱게 섞여 촉촉하다. 함께 나온 무김치에 싸서 먹는다.

심심하고 담백한 제주식 밀면
피난민의 음식으로 시작됐지만 전후 미국에서 원조로 받은 밀가루가 밀면이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우리가 먹는 밀면은 전쟁 속에서 피어난 음식문화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중에 생존을 위한 음식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메밀이나 전분이 부족해도 밀가루를 이용해 만든다. 물과 양념도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조절해 주니 음식은 생명력이 강해졌다.

요즘 밀면은 향토 음식이라는 타이틀을 벗고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역별로 고유의 색을 입었지만, 밀면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물과 비빔 사이의 어중간한 맛이 요즘 젊은이들의 입맛을 잡았다. 냉면보다 가볍게 먹을 수 있고 저렴한 가격도 한몫했다.

가장 배고픈 시기에 만들어져 아마도 가장 풍요로운 때에 인기를 끄는 밀면의 미래는 어디쯤일까.

opini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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